지난 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회의실에서 김광순씨 등 앱 개발 및 디자인 전문가 4명은 경찰관 4명과 모여 회의를 가졌다. 김씨는 자신이 준비한 범죄 제보 관련 통계 데이터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범죄나 교통사고 현장을 촬영한 시민이 좀 더 편하고 번거롭지 않게 경찰에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아침 9시에 시작된 회의는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났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동영상 촬영이 일상화되고,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일반 시민이 각종 범죄 현장을 촬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시민이 가진 각종 동영상을 받아 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동영상 제보를 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에겐 고민이 있다. 시민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민간에 있는 사람들이 앱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경찰의 눈이 아니라 제보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경찰은 김씨 같은 민간 디자인 전문가 4명과 함께 팀을 구성했다. 이 팀에 경찰관 4명을 투입했다. 이 8명은 매주 한 차례 이상 경찰서 회의실에서 만난다. '시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을 함께 논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앱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돼야 하는 지 방향을 잡았다. 김씨는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시민이 자발적으로 제보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혹시 제보해서 불이익이 생길지, 아니면 사용법이 번거로워서 귀찮은 마음에 제보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시민의 입장이 경찰의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이 직접 참여해 정부 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 3.0 브랜드 과제 국민디자인단’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이런 장면은 정부 3.0 정책이 시행되면서 가능해졌다.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공급하거나, 국민에게 단순히 의견만 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국민이 직접 공무원과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만든다. 정부 서비스를 국민이 디자인하는 셈이다.
농촌진흥청이 주도하는 '식물 이용 치유프로그램 개발'에도 민간이 참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식물을 길러 장애아나 비행청소년, 왕따 학생 등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텃밭을 가꾸거나 씨를 뿌려 각종 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 등을 알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이 참여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폭이 확 넓어졌다. 주부 남옥희씨는 농촌진흥청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갖고, "비행 청소년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생, 은퇴한 어르신들까지도 이 프로그램을 확대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남씨 등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이 프로그램에는 농촌진흥청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도 참여하게 됐다.
김경미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당초 프로그램을 농촌진흥청과 관련된 분야에 한정해서 봤는데, 민간과 함께 논의를 하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했던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디자인단 회의 모습.
맞벌이를 하거나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들에게 정보를 주는 '일가정 톡톡앱' 개발에도 민간이 참여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 오영미씨와 주부모니터링 요원 7명은 여성부 직원들과 함께 앱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앱 자체는 여성부 직원들이 개발했지만,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담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편리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은 오씨와 같은 모니터링 팀의 몫이다. 그들은 앱을 써본 사람을 만나 의견도 듣고 설문도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육아 수당, 보건복지부의 아이 돌보미 서비스 등에 대한 정보가 추가로 반영된다. 앱에 있는 검색 조건도 늘어났다. 기존에는 '여성' '기업' '남성' 이렇게 3개만 있던 검색 조건이 '소득 수준' '직업 보유 여부' 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오씨는 "여성부는 앱을 공급하는 공급자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민간인들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면서 좀 더 풍부해졌다"고 말했다.
윤종인 안전행정부 창조정부기획관은 "공공 분야는 민간과 달리 경쟁이 없어 정부 시각에서 탁상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익숙했었지만 정부 3.0 정책으로 민간이 함께 정책 개발에 참여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곽창렬 기자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3/2014062303627.html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회의실에서 김광순씨 등 앱 개발 및 디자인 전문가 4명은 경찰관 4명과 모여 회의를 가졌다. 김씨는 자신이 준비한 범죄 제보 관련 통계 데이터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범죄나 교통사고 현장을 촬영한 시민이 좀 더 편하고 번거롭지 않게 경찰에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아침 9시에 시작된 회의는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났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동영상 촬영이 일상화되고, 차량에 달린 블랙박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일반 시민이 각종 범죄 현장을 촬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시민이 가진 각종 동영상을 받아 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동영상 제보를 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에겐 고민이 있다. 시민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민간에 있는 사람들이 앱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경찰의 눈이 아니라 제보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경찰은 김씨 같은 민간 디자인 전문가 4명과 함께 팀을 구성했다. 이 팀에 경찰관 4명을 투입했다. 이 8명은 매주 한 차례 이상 경찰서 회의실에서 만난다. '시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을 함께 논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앱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돼야 하는 지 방향을 잡았다. 김씨는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시민이 자발적으로 제보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혹시 제보해서 불이익이 생길지, 아니면 사용법이 번거로워서 귀찮은 마음에 제보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시민의 입장이 경찰의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이 직접 참여해 정부 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 3.0 브랜드 과제 국민디자인단’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이런 장면은 정부 3.0 정책이 시행되면서 가능해졌다.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공급하거나, 국민에게 단순히 의견만 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국민이 직접 공무원과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만든다. 정부 서비스를 국민이 디자인하는 셈이다.
농촌진흥청이 주도하는 '식물 이용 치유프로그램 개발'에도 민간이 참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식물을 길러 장애아나 비행청소년, 왕따 학생 등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텃밭을 가꾸거나 씨를 뿌려 각종 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 등을 알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이 참여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폭이 확 넓어졌다. 주부 남옥희씨는 농촌진흥청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갖고, "비행 청소년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생, 은퇴한 어르신들까지도 이 프로그램을 확대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남씨 등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이 프로그램에는 농촌진흥청뿐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도 참여하게 됐다.
김경미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당초 프로그램을 농촌진흥청과 관련된 분야에 한정해서 봤는데, 민간과 함께 논의를 하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했던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디자인단 회의 모습.
맞벌이를 하거나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들에게 정보를 주는 '일가정 톡톡앱' 개발에도 민간이 참여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 오영미씨와 주부모니터링 요원 7명은 여성부 직원들과 함께 앱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앱 자체는 여성부 직원들이 개발했지만,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담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편리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은 오씨와 같은 모니터링 팀의 몫이다. 그들은 앱을 써본 사람을 만나 의견도 듣고 설문도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육아 수당, 보건복지부의 아이 돌보미 서비스 등에 대한 정보가 추가로 반영된다. 앱에 있는 검색 조건도 늘어났다. 기존에는 '여성' '기업' '남성' 이렇게 3개만 있던 검색 조건이 '소득 수준' '직업 보유 여부' 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오씨는 "여성부는 앱을 공급하는 공급자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민간인들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면서 좀 더 풍부해졌다"고 말했다.
윤종인 안전행정부 창조정부기획관은 "공공 분야는 민간과 달리 경쟁이 없어 정부 시각에서 탁상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익숙했었지만 정부 3.0 정책으로 민간이 함께 정책 개발에 참여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곽창렬 기자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3/2014062303627.html